어제 뭐 먹었어? 1,2/요시나가 후미



















43살 변호사 카케이 시로는 그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- 징그럽다는 평을 듣고 있음-멋진 동안과 쿨한 스타일과는 달리, 알고 보면 매일 저녁먹거리를 생각하며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초저가 저지방 우유팩선택에 고민하거나 매장마다 다른 가다랑어액 가격을 비교하며 분노하는 짠돌이 절약남(게이)이다. 현재 띨띨아방한 듯 보이는 야부키 켄지(미용사)와 동거 중이다. 대체 이 두 남자를 주인공으로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이며 대체 무슨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겠는가?

라기에 앞서 요시나가 후미는 이미 예전 [사랑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습니다]란 자신의 자전적스러운 단행본으로 그의 식생활에 대한 집착을 읽는 독자 부끄러울 정도로 (사실은 동감과 공감의 손뼉을 마구 쳐댔음)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. [사랑이 없어도...]의 경우 주인공들이 실제 존재하는 맛집을 찾아다니며 각각 챕터엔 가게정보와 코멘트까지 달린 만화로 보는 맛집 소개책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.

[어제 뭐 먹었니?]의 경우 맛집 순방이 아니라 주인공인 카케이가  토마토참치국수나 우엉밥 혹은 마말레이즈잼같은 가정식요리를 아예 매매 챕터마다 준비과정부터 선보여주신다. 남남+ 식 (食)=이니 당연히 나의 직격食(취향)인셈이다.  BL물과 슬램팬픽으로 출발한 이 작가의 힘은 화려하고 섬세한 극화체가 아닌, 컷의 여백과 생략을 이용한 단대사로 보여주는 묘한 감동과 뒤끝 주며 관조하게 하는 엔딩들, 바로 이것들이다. (흔히 볼 수 있는 마구잡이 해피엔딩들은 때론 얼마나 기만적이며 값싸 보이는가.) 그런데 사실, 주인공인 카케이와 켄지가 게이이긴하다만 요시나가 후미의 최근작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BL물로 즐기기엔 좀 무리가 있다. [사랑이 없어도 먹고...]에선 BL물을 그려 생계를 이어가는 자신을 비꼬는 자괴감마저 보일 지경이었고. [서양골동양과자점]의 글로벌한 히트로 더이상 BL물은 쓰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(대망과 아마조네스의 페미니즘판 같던 번뜩이는 상상결집코믹스 '오오쿠'를 읽어보시라) 그래도 꾸준히 동성애를 집어넣는 걸 보면 여성독자를 의식한 상업적 잔머리보다는 슬램부터 시작된 타고난  BL러버 (골수동인녀)라고 믿고 싶기도 하고.

여하간 각설하고, 2009년 정초부터 9개월 만에 쓰는 리뷰가 허구한 날 맛집이더니 결국 요리만화냐고 구박하실지도 모르겠으나 (요즘엔 주관심사는 식생활 아니면 성생활) 전 이제 '사랑이 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' 나이를 각성했단 말입니다! .(왠지 서글프다?) 그리고 때론 식食이 주는 위안과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인지 생각해보자고요. 박완서 씨가 남편을 잃고 하나 남은 외아들까지 잃은 뒤, 차마 울지도 못했을때  박경리선생은 원주에 그녀를 불러다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텃밭에서 주워온 시래기로 끓인 된장국과 고슬고슬한 막 지은 밥이 올려진 상을 차려주었다고 했다. 박완서 씨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밥상 앞에서 그제야 눈물을 터뜨릴 수 있었다고, 그때 그 뜨거운 밥상으로 박경리 씨를 회고한다. 생각나는 소설도 있다. 레이먼드 커버의 걸작 단편집 [대성당]의 '별 것 아닌 것 같지만, 도움이 되는' 도 한번 읽어보길 권하겠다. 오븐에서 막 꺼내온 따뜻한 계피 롤빵이 어떻게 기적처럼 삶의 긍정을 이끌어 내는지 볼 수 있다고요.

뭐 게이커플이 등장하는 일본 가정식요리만화에 아아주 대단한 삶의 가치와 인생을 기대하자는 건 아니다. 하지만 읽고난 뒤, 가책 없이 마음 짠해지는 치유계임이 분명하니 추천한다. 제 각각의 사연이 있는 짧지만 긴 하루 일상을 보내고 돌아와 차려진 밥상의 맛을 씹고 음미하며 '나 지금 무지 행복해~♡'' 라는 대사를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.  뜨거운 돼지고기 단호박 카레우동을 땀 흘리며 먹은 후 차가운 우유우무를 행복하게 떠먹는 아방켄지를 바라보며 '보면 볼수록 내 타입은 아닌데...이런 저런 일을 겪고 이 녀석을 마흔 무렵에 만나게 된 게 다행인 것 같다' 라는 카케로의 독백을 읽다 보면 세월이 주는 연륜을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편안한 중년커플의 안도감까지 느껴질 지경이다.(마흔살커플이 그리 흔한 건 아니죠.)  2권까지 번역판이 출간되어있다.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

by 진홍혈관 | 2009/03/08 22:22 | common | 트랙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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